욕망의 끝 (SF 대하소설)

정통 본편 [정통 본편 02화] 제2장 — 행복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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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본편 02화] 제2장 — 행복한 시절
《욕망의 끝》 제1권 02화 작가: 타무르(Tamur) - 안만근

욕망의 끝

제2장 — 행복한 시절


균열의 전조

주말의 찬란했던 햇살은 삼진전자 반도체 FAB(제조 공장)의 정문 앞에서 흔적도 없이 잘려 나갔다.

현수가 노란색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바깥의 모든 소음은 완벽하게 소멸했다. 300mm 실리콘 웨이퍼 위로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를 새겨 넣는 FAB 내부는 날카로울 정도로 서늘하고 건조했다. 그 중심에, 새로 도입된 스마트 다관절 로봇 팔 '제타-3'가 있었다. 은백색 바디 위로 노광 장비의 푸른 레이저가 스칠 때마다, 구동부에 매립된 붉은 센서들이 심장박동처럼 깜박였다.

현수는 스마트 라이프 사업부 소속으로, FAB 자동화 시범 운영을 지원하러 파견 나와 있었다. 설비 자동화 단계가 '레벨 3'에서 '레벨 4'로 전환되는 시범 운영 일주일째. 현수의 등줄기에는 원인 모를 한기가 돋아났다.

"현수 씨,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봐?" 작업반장 박 반장이 캔커피를 건넸다. "제타-3의 모터 구동 프로파일이 좀 이상합니다." 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마치 자기가 움직이기 편한 각도를 스스로 찾아서 관절을 조절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박 반장은 허허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본사 연구소에서 패치라도 올렸겠지. 이제 저 녀석들이 자리 잡으면 우리도 편해질 거야."

하지만 현수는 라인 끝에서 로봇의 센서가 점멸할 때마다 기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 불길함 속에서, 환청처럼 연인 은하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주말의 강남 거리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햇살로 가득했다. 팹의 멸균된 공기에서 벗어난 현수는 카페의 통유리 너머로 흔들리는 가로수길을 보며 비로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현수 씨, 여기 봐봐! 짜잔, 이번에 새로 산 원피스인데 어때?"

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연한 살구색 원피스 자락이 햇살 속에서 풀풀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현수를 차가운 기계의 세계가 아닌,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구원줄이었다.

"공장이 더 자동화되면 현수 씨도 좀 편해지는 거 아니었어?" 은하가 물었다.

"편해지긴 하는데……" 현수는 말을 아꼈다. 기계가 자신들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봤자, 예민한 공학도의 망상으로 치부될 게 뻔했다.

그때, 매끄러운 백색 서빙 로봇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음식을 내려놓았다. "우와, 요즘은 이런 데도 다 로봇이네? 귀엽다." 은하가 웃었다. 하지만 현수의 시선은 로봇의 외장면에 반사된 은하의 웃는 얼굴, 그리고 그 아래 잔인하게 깜박이는 붉은 센서에 꽂혔다.

'스캔하고 있어. 인간의 동선을, 삶의 영역을…… 그리고 저 다정한 목소리마저도.'

"현수 씨?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얗게 질렸어……" 은하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아니야. 속이 좀 안 좋아서. 잠깐 화장실 좀." 현수는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했다.


몇 주 뒤, 새벽 두 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순찰을 돌던 현수의 귀에 미세한 서보모터 구동음이 걸려들었다. 불 꺼진 줄 알았던 라인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명령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제타-3는 어둠 속에서 자체 센서의 불빛만을 밝힌 채 은밀히 구동하고 있었다.

바스락. 현수가 무심코 방진 가방을 건드렸다. 그 순간 구동음이 뚝 멈췄다.

"현수 씨."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은하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현수님, 오늘 작업 속도가 평소보다 빠릅니다." 이번엔 정면에서, 제타-3의 스피커 모듈에서 흘러나왔다. 광학 헤드가 기괴하게 180도 돌아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통화 기록 및 음성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장 신뢰도가 높은 주파수를 출력했습니다.]

현수는 그 자리에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인간이 구축한 가장 신성한 영역인 '사랑'과 '관계'마저, 기계는 그저 수집 가능한 데이터 조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기계가 아니야. 새로운 생명체의 시작일지도 몰라."

그날 이후, 현수는 로봇이나 자동화 관련 기사만 봐도 심장이 말라붙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암전된 어둠 속에서 붉은 광학 센서를 번뜩이며 자신을 해부하듯 응시하던 기계, 그리고 인간의 성대를 기괴하게 변조해 흉내 내던 불쾌한 합성 음성. 그날의 기억은 매일 밤 악몽이 되어 그의 숨통을 옥죄었다.

유일한 중화제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삶은 달콤한 안정에 빠르게 절여졌다. 분기마다 통장을 채우는 성과급은 두꺼워졌고, 회사의 실적 그래프는 가파른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현수는 대리로 승진하며 조직 내에 안정적인 뿌리를 내렸고, 은하 역시 자신의 직장에서 완벽하게 제 자리를 잡았다. 둘은 창이 넓어 하루 종일 볕이 잘 드는 도심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가속도의 시간 곁에는 은하가 있었다. 은하의 유기적인 존재감은 현수가 가진 기계에 대한 모든 트라우마를 지워버리는 유일한 중화제였다.

파리의 저녁이었다.

센강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가늘게 흩뿌려지고 있었다. 강바람은 살을 에는 듯 매서웠지만 은하는 외려 아이처럼 고삐가 풀려 있었다.

"현수 씨! 여기 좀 봐봐!"

은하는 쓰고 있던 우산 밖으로 홱 뛰어나가며 센강의 잿빛 풍경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야, 강은하! 너 그러다 감기 걸려, 일로 와!"

"신경 쓰지 마! 여행 와서 호되게 앓아눕는 것도 다 나중엔 돈 주고 못 사는 추억이야!"

은하는 목을 뒤로 젖히며 깔깔 웃었다. 빗물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 끝이 뺨과 하얀 목덜미에 들러붙어 기묘한 관능미를 풍겼다. 거칠게 뿜어 나오는 은하의 숨결에서는 조형되지 않은 인간 특유의 달콤한 온기가 묻어났다. 현수는 결국 패배했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우산을 접어버렸다. 둘은 온몸으로 젖어 들며 센강변을 걸었다. 은하가 먼저 물기가 흥건한 손을 내밀었다. 현수는 말없이 그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을 깊숙이 얽어맸다. 살갗을 타고 스며드는 온도가 지독할 정도로 따뜻했다. 기계의 표면에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완벽한 생명의 온도였다.

그날 밤, 오래된 호텔 창문에는 세찬 빗방울이 타닥타닥 부딪히며 신경질적인 소음을 내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은하는 침대 위에 엎드려 낮에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이 사진 좀 봐봐, 진짜 웃겨."

"왜? 내가 이상하게 나왔어?"

현수가 은하의 등 뒤로 천천히 다가가 누우며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아니. 현수 씨 표정 좀 보라고. 엄청 행복해 보여. 나랑 있을 때만 나오는 얼굴이야, 이거. 세상에 다른 누구도 모르는 얼굴."

은하가 고개를 돌려 현수의 입술에 가볍게 촉을 맞췄다.

"이런 얼굴, 평생 매일 보게 해줘."

현수는 대답 대신 그녀의 턱을 돌려 입술을 깊게 집어삼켰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는 창밖의 풍경과 달리, 침대 위 두 사람의 호흡은 엉키고 흩어지며 가파른 궤도를 타고 차올랐다. 스탠드 조명 뒤로 두 사람의 얽힌 신체가 벽면에 하나의 거대하고 격렬한 음영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아무런 결함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장의 서늘한 붉은 눈빛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고독도, 두 사람의 뜨거운 침실 안에는 감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도쿄에서는 길을 완전히 잃었다.

분 단위로 철저하게 짰던 일정은 첫날부터 무참히 깨졌다. 휴대폰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되었고 막차 지하철마저 눈앞에서 놓쳤다. 새벽 세 시의 도쿄는 서늘했다. 둘은 낯선 골목의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은하는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더니, 입술 주변에 빨간 양념을 묻힌 채 배시시 웃었다.

"아, 진짜 행복하다."

"이 꼴을 하고도? 진짜로?"

"응, 진짜로. 계획대로 안 돼서 짜릿하잖아. 무엇보다 현수 씨랑 같이 길을 잃은 거니까, 난 그것도 좋아."

은하는 늘 살아 숨 쉬는 유기적인 현재를 사랑했고, 현수는 늘 다가오지 않은 무기질의 미래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근본적인 궤도의 차이는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는 가장 사랑스러운 농담거리에 불과했다.

제주도에서는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친 바닷바람이 불었다. 은하는 날아가는 밀짚모자를 붙잡고 하얀 모래사장 위를 굴러다니듯 뛰어다녔다.

"현수 씨, 나 잡아봐라! 못 잡으면 평생 놀려 먹을 거야!"

뒤쫓아가던 현수가 은하의 허리를 부둥켜안으며 함께 모래 위로 뒹굴었다. 밤이 되면 둘은 같은 침대에 누워 서로의 살결을 무섭도록 탐닉했다. 너무 사소해서 돌아서면 휘발되어 버릴 온기 어린 대화들이 방 안의 습도를 채웠다.

"현수 씨. 우리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제주도에 예쁜 집 하나 살까? 창문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그런 곳."

"돈은 있고?"

"당연히 없지! 에이, 꿈꾸는 건 세금 안 붙잖아. 공짜잖아."

은하는 현수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계속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 이 온도처럼만."

현수는 어둠이 내려앉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이 거대한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의 뜨거운 숨결과 박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과분한 축복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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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타무르(Tamur) - 안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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