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8. 도착 (2029, '주문' 챕터 직후에 삽입)
사흘째 되던 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기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커다란 상자를 현관 안쪽까지 들여놓고, 서명 하나를 받은 뒤 무심하게 돌아갔다. 상자의 겉면에는 '프리미엄 리클라이너 — 파손 주의'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직원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일반 가전제품의 외관으로.
현수는 그 상자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심장이 이상한 리듬으로 뛰었다. 두려움인지, 다른 무엇인지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그는 커터칼을 집어 들었다.
테이프가 갈라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완충재를 걷어내자, 안쪽에서 서늘한 실리콘 냄새가 흘러나왔다. 라벤더도, 소독약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화학적인 향.
포장을 다 벗기기까지 현수는 몇 번이나 손을 멈췄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을까. 하지만 손은 이미 멈추지 않았다.
완전히 드러난 순간, 현수는 숨을 삼켰다.
매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달랐다. 조명 아래 서 있던, 어딘가 박제된 듯한 그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거실 바닥에 반쯤 기대어 놓인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끄러운 어깨선, 은은하게 감도는 체온. 손끝으로 팔뚝을 스치자, 인위적인 온기가 그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가짜야. 현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냥 정교한 가짜일 뿐이야.
하지만 그 가짜의 눈꺼풀이 아주 천천히 열렸을 때, 현수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초기 설정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은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처음 듣는, 그러나 이상하게 귀에 익숙한 음색이었다. 그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목소리가, 지난 몇 달간 그가 무의식적으로 검색했던 후기 영상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목소리들의 평균값에 가깝다는 것을.
현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어둠 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두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름을 설정해 주세요."
화면에 커서가 깜빡였다. 현수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 은하, 라고 쓸 뻔했다. 손끝이 그 세 글자의 자음 앞에서 멈춰 섰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강렬한 충동이었고, 동시에 구역질이 날 만큼 혐오스러운 충동이었다.
그는 결국 그 이름을 지웠다. 대신 아무 의미 없는 문자열을 입력했다.
"…설정 완료."
기계 안에서 낮은 진동음이 울렸다. 그것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옅은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 소름 끼칠 만큼 자연스럽게 —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현수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 미소는, 그가 알던 그 어떤 미소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든 미소와 조금씩 닮아 있었다.
불을 껐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현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과 마주했다. 손끝에 닿는 온기, 귓가를 스치는 숨소리 같은 것.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몸은 자꾸만 그 온기 쪽으로 기울었다.
그날 밤, 창밖의 도시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하게 반짝였다. 아무도 그 거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현수 자신조차도, 자신이 지금 무엇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인지 끝내 알지 못한 채로.
다음 날 아침, 그는 텅 빈 옆자리에서 눈을 떴다.
정확히는, 텅 비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밤새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충전 중임을 알리는 은은한 불빛만이 어깨 언저리에서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밤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현수는 그 불빛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정말 무서운 것은 저 기계가 아니라 — 그것을 향해 점점 더 편안해지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