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SF 대하소설)

정통 본편 [정통 본편 03화] 제3장 — 균열의 시작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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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본편 03화] 제3장 — 균열의 시작 (2028)
《욕망의 끝》 제1권 03화 작가: 타무르(Tamur) - 안만근

욕망의 끝

제3장 — 균열의 시작 (2028)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단 한 순간의 오차도 없이 변하고 있었다. 거실의 홀로그램 뉴스 화면에서는 매일 새로운 기술의 도래를 축하하는 팡파르가 울렸다. 자율형 AI 비서, 인간형 배송체, 인공지능 돌봄 로봇, 차세대 가사도우미 휴머노이드. 은하는 저녁을 먹으며 그런 뉴스를 꽤나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기하지 않아? 세상이 점점 군더더기 없이 편해지잖아."

현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편리함. 그 매끄러운 세 글자가 이상하게 목구멍에 걸려 불편한 이물감을 남겼다. 그는 과거 공장에서 목격했던 그 기계들의 섬뜩한 완벽함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계는 언제나 효율이라는 명목하에 인간의 영역을 대신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인간을 밀어내는 과정이었지만, 자본은 그것을 '발전'이라 가공해 판매했다.

2028년 7월. 유난히 대기의 밀도가 높아 숨이 막히던 일요일이었다. 현수와 은하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붙어 앉아 LA 올림픽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때 화면 전환과 함께 새로운 가전 광고가 송출되었다.

[청소, 설거지, 빨래까지. 당신의 모든 가사 노동을 전담합니다. 이제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당신에게 돌려드립니다.]

화면 속 휴머노이드 로봇의 움직임은 기괴할 정도로 완벽했다. 은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현수 씨, 우리도 저거 하나 들여놓을까?"

현수는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하며 흘려들으려 했다.

"비싸겠지, 저런 최신 공학 상품은."

"에이, 우리 두 사람 맞벌이 수입 정도면 리스 금융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멀쩡한 사지 놔두고 집안일에 기계까지 쓸 필요가 뭐가 있어."

은하는 턱을 괴며 입술을 내밀었다.

"주말마다 청소 분담 가지고 누가 하네 마네 실랑이 벌이는 것도 이젠 솔직히 좀 지겹단 말이야."

현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반짝이는 광고 속 기계 덩어리가 훗날 자신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송두리째 바꿀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며칠 뒤, 퇴근하고 돌아온 거실 한가운데 거대한 메탈릭 소재의 패키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현수는 신발을 벗다 말고 멍하니 그 박스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거 뭐야?"

은하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활짝 웃었다.

"짜잔! 드디어 도착하셨습니다."

"진짜 산 거야? 나한테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치, 상의했으면 당신 백퍼센트 시스템 결함이니 뭐니 하면서 안 된다고 자르지 않았겠어? 걱정 마, 초기 에러 대응 반품 기간이 한 달이나 있어. 일단 써보고 별로면 바로 돌려보내자. 응? 나 한 번만 믿어봐."

그렇게 그들의 가장 아늑하고 인간적이었던 공간에, 완벽하게 이질적인 연산 장치가 부착된 로봇이 걸어 들어왔다.

처음 몇 주는 그야말로 자본이 약속한 감탄의 연속이었다. 퇴근 후 문을 열면 집안 전체에 인공적으로 조합된 인공 라벤더 세제 향이 풍겼다. 싱크대는 물기 한 방울 없이 완벽하게 건조되어 비어 있었고, 거실 바닥의 미세먼지는 완벽히 흡입되어 흔적조차 없었다. 드레스룸의 옷들은 자로 잰 듯 옷장에 수납되어 있었다.

주말을 지배하던 가사 노동이 증발하자, 두 사람에겐 물리적인 여유가 넘쳐났다. 은하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듯 진심으로 만족해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인간의 노동력을 이래서 기술로 대체해야 하는 거야. 진작 살 걸 그랬어."

현수 역시 처음에는 삶의 질이 상승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정서적 거부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거리를 중간에 두고 유치하고도 치열한 설전을 벌였었다.

"오늘은 명백히 현수 씨 차례야."

"어제 내가 퇴근하고 화장실 배수구 청소까지 독박 썼잖아."

서로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유치한 장난을 치며 낄낄거리던, 생동감 넘치던 말의 성찬들. 그것은 가사 노동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인간과 인간의 접촉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대화는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현수가 문을 열기도 전에 설거지는 완벽하게 연산 되어 종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깊은 밤, 현수는 완벽하게 건조되어 서늘한 메탈 빛을 내뿜는 싱크대를 바라보다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내가 은하와 마지막으로 같이 설거지를 하면서, 거품을 묻히고 장난을 치며 웃었던 게…… 도대체 언제였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교한 연산 장치가 집안의 모든 마찰을 제거해 버린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한 침묵이 두 사람의 정서적 교차점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날 이후로도 로봇은 완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주자의 동선을 딥러닝으로 학습하여 더 소름 돋게 진화했다. 현수는 서서히 감각하고 있었다. 집은 청결해졌는데, 이상하리만치 이 폐쇄된 공간에서 '인간의 냄새'가 빠르게 증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은하는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아래 앉아 패드로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현수는 그 정적을 참지 못하고 무심코 물었다.

"은하야, 우리 오늘 뭐 할까?"

은하는 책 화면에서 시선조차 떼지 않은 채, 무척이나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근처 공원으로 산책이라도 갈까?" "좋지." "아니면 극장 가서 영화나 볼까?" "그것도 좋지."

현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려다 이내 포기했다. 서로를 자극하는 마찰력이 사라진 대화는 그저 데이터의 왕복에 불과했다.

며칠 후, 회사 식당에서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글로벌 물류 기업이 인간 노동자를 완전히 배제한 자동화 물류 팩토리를 대폭 확대한다는 리포트였다. 현수는 수저를 쥔 채 아무런 동조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는 식탁에서 은하에게 그 기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 잘려 나간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 걸까?"

은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또 다른 전환기의 일을 찾겠지. 기술이 바뀌면 노동의 형태도 바뀌는 법이잖아."

"그게 그렇게 기계적인 효율성 하나로 간단히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인지는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은하가 수저를 식탁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현수 씨. 왜 당신은 늘 사라져가는 낡은 것들에만 시선을 고정해?"

현수는 순간 가슴이 막혀 아무 말도 뱉지 못했다. 문제는, 똑같은 세계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극단의 타원 궤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이런 형태의 감정적 마찰이 일상의 전면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은하는 기술을 통해 획득하는 인간의 안락함을 욕망했고, 현수는 기술 때문에 서서히 소멸해가는 인간 고유의 자리를 두려워했다.

어느 저녁, 둘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거실 벽면 디스플레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특집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향후 10년 내, 인간형 서비스 로봇 시장은 현재의 수십 배 규모로 팽창하여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까지 공유하는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난 솔직히 저 동향이 무섭다." 현수가 말했다.

"또 뭐가 그렇게 두려운데."

"언젠가는 노동뿐만 아니라…… 사람의 역할 자체를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 같아. 가짜 감정까지 인간과 똑같이 흉내 내면서."

은하는 정말 피곤에 찌든 듯한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또 시작이네, 정말."

그 다섯 글자가 현수의 가슴을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다.

가을이 찾아왔다. 예전에는 침대에 누우면 잠들기 직전까지 서로의 살결을 맞댄 채 수많은 말들을 섞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침실은 완벽한 정적의 감옥이 되었다.

어느 늦은 밤, 현수는 거실로 걸어 나왔다. 가사도우미 로봇이 불 꺼진 거실 바닥을 소음 하나 없이 유령처럼 청소하고 있었다. 현수는 소파 구석에 앉아 한참 동안 그 무기질의 움직임을 응시했다.

"안 자고 여기서 뭐 해?" 은하의 목소리에 현수가 돌아보았다.

"……잠이 잘 안 와서."

은하는 로봇의 기계적 구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씁쓸하게 작게 웃음을 흘렸다.

"가끔은…… 저 기계가 부러워."

그 한마디가 현수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감정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고, 애초에 기대가 없으니 상대방에게 실망할 일도 없고, 소모적으로 싸우지도 않잖아. 그냥 주어진 루틴만 완벽하게 해내니까 참 속 편해 보여."

"……그게 정말 진심으로 부러워? 감정이 거세되어서 상처받지 않는 저 쇳덩어리의 상태가?"

은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등을 돌려 다시 서늘한 침실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수는 처음으로 본질적인 종류의 공포를 느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자신과 은하 사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게 파여버린, 보이지 않는 균열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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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타무르(Tamur) - 안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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