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막간 — 최 부장의 전화 (2028, 균열 시기에 삽입)
늦은 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현수는 벨소리를 세 번쯤 무시하다가, 결국 받았다.
"…여보세요."
"현수냐."
낯익은 목소리였다. 낮고, 갈라지고, 오랫동안 담배에 절어 있던 목소리.
"부장님?"
"어, 나다."
침묵이 흘렀다. 명예퇴직한 지 1년이 넘도록 연락 한번 없던 사람이었다. 잘 지낸다. 걱정 마라. 그게 마지막 문자였다.
"어떻게, 잘 지내세요?"
"그럭저럭." 최 부장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너 요즘 스마트 라이프 사업부에 있다며."
"…예. 어떻게 아셨어요?"
"소문이 그렇더라. 옛날 동기들이 아직 몇 명 남아 있으니까."
현수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죽였다. 거실은 조용했다. 가사도우미 로봇만이 구석에서 소음 없이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전화는 왜요."
최 부장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낮은 숨소리만 들렸다.
"너 EVE라고, 들어봤냐."
현수의 손끝이 순간 굳었다.
"…그게 뭔데요."
"프로젝트명이야. 사내에서도 몇 명만 안다더라. 나도 퇴직하기 직전에 우연히 들었어. 서버실 유지보수 나갔던 후배 하나가 지나가는 말로."
"뭐 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몰라, 정확힌. 근데 그 이름이 붙은 문서는 전부 접근 권한이 임원급 이상이래. 라인 자동화 따위 프로젝트에 그런 등급이 왜 필요하냐."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년 전, 관리동 회의실 스크린에서 스쳐 지나갔던 그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1단계 완료. 2단계 준비 중. 인간형 동반 시스템 연구 착수.
"…부장님, 그건 왜 저한테."
"네가 그 부서에 있으니까." 최 부장이 짧게 말했다. "너희가 만드는 그 가사로봇, 그 다음 버전들. 그게 EVE의 일부일 수도 있다."
"…무슨 뜻이에요, 그게."
"나도 모른다. 그냥, 조심해라. 그 말 하려고 걸었다."
"부장님."
"어."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좀."
최 부장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한숨에 가까웠다.
"괜찮다. 그냥, 요즘 밤에 잠이 잘 안 와서."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현수는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 거실 저편, 가사도우미 로봇의 대기등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은은한 색으로.
현수는 그 불빛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저 로봇이 단순히 그릇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는 기계 이상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이 짧은 통화가, 최 부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경고가 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