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21장 — 은수의 친구들
은수가 스물세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유진은 인조인간이었다. 처음 배정받았을 때 은수는 별생각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남성형이든 여성형이든, 인간이든 인조인간이든, 기숙사 배정에 그런 구분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유진은 좋은 룸메이트였다. 밤새 과제를 도와줬고, 은수가 실연으로 울던 밤에는 말없이 곁에 있어 줬다. 은수는 가끔 유진에게 물었다.
"너는 애인 안 만들어?"
"만들었었어. 작년에."
"어떤 사람이었는데?"
"사람 아니었어. 나처럼, 인조인간."
은수는 그 대답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캠퍼스에는 그런 커플이 흔했다. 인간과 인조인간, 인조인간과 인조인간. 어느 조합이든, 다들 손을 잡고 강의실을 오갔다.
"근데 헤어졌어?"
"…걔가 먼저 다른 사람을 만났어. 인간이었는데. 나보다 그 사람이랑 더 잘 맞는다고 하더라."
은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사람 냄새 난다고 생각했다. 이별의 이유가, 그저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아주 평범한 문장이라는 것이.
그해 봄, 은수는 같은 과 선배인 재현과 연애를 시작했다. 인간이었다. 두 사람은 삼 년을 만났고, 스물여섯이 되던 해 결혼했다.
결혼 후 삼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시기가 맞지 않을 뿐이라고. 은수는 그 말을 믿으려 애썼다. 하지만 밤이면, 알 수 없는 불안이 그녀를 잠식했다.
"…요즘 그런 부부, 되게 많대." 재현이 위로하듯 말했다. "우리 회사 동기도, 결혼한 지 오 년 됐는데 아직이야."
"그 사람들도, 원인을 모른대?"
"몰라. 근데 병원에서 그러는데, 요즘 전반적으로 그렇대. 정확한 이유는 아직 연구 중이라고."
은수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은하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그녀를 낳았다. 그때는 다들 '늦은 결혼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스물몇 살에 결혼한 부부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은수는 부모님 댁에 들렀다. 현수는 이제 흰머리가 제법 늘어 있었다. 은하는 정원에서 화초를 다듬고 있었다.
"엄마, 아빠. 나 좀 물어볼 게 있어."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요즘 부부들, 애 갖기가 왜 이렇게 힘들까?"
현수와 은하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그 침묵 속에는, 은수가 알지 못하는 어떤 무게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글쎄다." 현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도 정확힌 모르겠어. 근데 회사에서 가끔 그런 얘기가 나오긴 해."
"무슨 얘기?"
"…아니야. 그냥, 요즘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니까, 사람도 거기 적응하느라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은수는 그 대답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느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그날 밤, 부모님 댁을 나서기 전, 은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 뒤로 흐릿하게 잡힌 낯선 실루엣.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운 형체였다.
"아빠, 이거 누구야?"
현수는 그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아무도 아니야. 그냥, 오래전 사진이라 그래."
은수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흐릿한 실루엣이, 이상하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수는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요즘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무슨 생각?"
"우리 세대는…… 아이를 못 갖는 게, 뭔가 더 큰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전화 너머로, 유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지도 몰라." 유진이 마침내 말했다. "근데 그게 뭔지는, 아마 너희 인간들도 아직 모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