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9장 — 주문
다시 그 잔인한 밤이었다.
현수는 자신이 왜 또다시 이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가슴 뼈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의 명확한 직감뿐이었다. 더는…… 단 하루도 이 고독을 버텨낼 힘이 없다.
그는 다시 어제의 그 술집, 어제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단 하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취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술은 단지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가벼운 마취 도구에 불과했다.
얼마 후, 그는 홀린 듯 술집을 나왔다. 발걸음은 자로 잰 듯 익숙한 방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걸음걸이에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성인 전용 인텔리전트 멀티숍]
간판은 여전히 어두운 골목 구석에서 붉은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현수는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가슴 깊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문을 밀었다.
딸랑.
이번에는 그 소리가 기괴하게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고향 집에 돌아온 것처럼 이상하리만치 아늑하고 익숙하게 귓가를 감쌌다.
직원이 조용히 걸어 나와 눈 인사를 건넸다.
"……또 오셨네요, 고객님."
현수는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아주 작게, 힘없이 끄덕였다. 어제와 다르게,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며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진열대 케이스 앞. 그는 어제 보았던 바로 그 모델 앞에 멈춰 섰다. 손가락 끝을 살짝 대자, 인위적인 체온 유지 기능 덕분에 신기하게도 미약한 온기가 전해졌다. 완벽하게 정지된 얼굴. 나에게 그 어떤 대답도 요구하지 않는 무구한 얼굴.
현수는 그 가짜 피부를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저 기계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평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뒤이어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위안이 이어졌다.
'그래서…… 지독하게 편하다.'
문득 머릿속에서 은하의 예전 눈빛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를 사랑해서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묻던 그 살아 숨 쉬던 눈빛들. 처음에는 그것이 달콤한 대화였고, 시간이 흘러 서로를 갉아먹는 잔인한 압박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이 되어 서로를 찢어놓았다. 기계는 나에게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 소모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결정하셨습니까?"
직원이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아주 조용히, 나지막하게 물었다. 현수는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영혼이 나간 눈으로 실리콘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하다가, 아주 천천히 메마른 입술을 열어 속삭였다.
"……저걸로, 주문하겠습니다."
말이 끝나는 순간, 세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적에 잠겼다. 이전의 조용함은 어떻게든 인간으로 버텨보려는 처절한 기다림의 침묵이었고, 지금의 조용함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완전히 내려놓은 완벽한 끝을 의미하는 침묵이었다.
현수는 결제 단말기 화면을 보았다. 거대한 숫자가 찍혔고, 그의 카드가 단말기에 스치듯 닿았다.
띠리릭. 승인 완료.
짧고 명쾌한 기계음이 울렸다. 그 순간 거창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눈물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가전제품을 산 것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아주 깊은 심연의 밑바닥에서부터, 현수라는 인간을 지탱하던 마지막 기둥 하나가 아주 천천히 모래성처럼 주저앉아 바스러졌다.
직원이 주문서를 접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스페셜 맞춤 배송이라, 자택까지는 3일 정도 소요됩니다. 박스는 일반 가전제품 외관으로 철저히 보안 처리되어 발송됩니다."
현수는 좀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 문을 나설 때 다시 한번 딸랑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차가운 겨울 밤거리로 다시 나왔다. 도시는 여전히 현수의 파멸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살아있는 인간들의 가쁜 숨소리와 네온사인을 내뿜으며 화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현수는 터덜터덜 젖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심장이 멎을 듯한 거대한 공포와 함께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어둠 속에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차디찬 진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고독을 해결하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더 이상 인간 세상에서 상처받으며 고독하게 버티지 않기로 한, 가장 비참한 형태의 포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은하가 떠난 뒤 정말로 잃어버렸던 것은 그녀의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든 인간으로 살아남아 하루하루를 버텨내려던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힘'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매장 밖 스탠드 불빛에 비친 현수의 그림자가 벽면을 따라 길게 늘어났다. 실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현수의 삶을 집어삼킬 검은 그림자의 실루엣은 이미 그의 등 뒤를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