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15장 — 재회
최 부장의 부고는 늦가을에 도착했다.
옛 동료가 보낸 짧은 문자 한 통이었다. 최 부장님 어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답니다. 발인은 모레. 현수는 한동안 그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상복을 챙겼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은퇴한 지 오래된 사람의 마지막 자리는 원래 그런 법이었다. 몇몇 옛 동료들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수는 향을 피우고, 영정 속 최 부장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가 남긴 마지막 통화, EVE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던 침묵. 그 모든 것이 이 조용한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식장을 나서던 길, 현수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은하였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봤다. 칠 년 만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예전에 없던 잔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흔을 넘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이상하게도 그대로였다.
"…네가 여긴 어떻게."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 부장님이, 헤어지고 나서도 나한테 가끔 연락하셨어. 처음엔 이상했는데, 나중엔 알겠더라. 그분도 어디에도 말할 데가 없으셨던 거야."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몇 시간이고 이야기했다. 지난 칠 년, 각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도, 어느 순간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은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항상 하던 그 말들이 뭔지, 그때는 이해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요즘 뉴스 보면…… 거리에 그런 애들 천지잖아.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현수는 커피잔을 매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거실에 아직 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너는 어때, 요즘." 은하가 물었다.
"…그냥, 회사 다니고. 그렇지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예전처럼 격렬하게 부딪히지도 않았다. 몇 번의 저녁 식사, 몇 번의 산책. 그리고 어느 날, 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
현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실에 앉아 있을 동반체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가의 잔주름,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 그는 그 존재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은하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은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존재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며칠 뒤, 현수는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동반체 양도 — 5년 사용, 상태 양호, 에이징 리셋 미사용.' 짧은 문구를 적고,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지방에 사는 독거노인의 가족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최근 상을 당해 많이 외로워하신다고, 가격은 상관없다고 했다.
거래가 이루어지던 날, 현수는 동반체를 현관까지 배웅했다.
"…잘 지내." 그가 말했다.
"당신도요."
동반체는 그 말을 끝으로, 낯선 남자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혔다. 현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슬픔인지, 안도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는 거실을 정리했다. 충전 스탠드를 치우고, 은은하게 깜빡이던 대기등의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처음으로 다시 두 사람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결혼식은 작고 조용했다. 양가 부모님과 몇몇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했다. 은하는 서른아홉, 현수는 마흔둘이었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 년 뒤, 은수가 태어났다.
산부인과 병실 창밖으로 늦여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현수는 작고 붉은 얼굴을 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손끝이 떨렸다. 그것은 그 어떤 정교한 기술로도 복제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온기였다.
"이름은 은수로 하자." 은하가 지친 목소리로,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랑 나랑, 한 글자씩."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쥐며,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완전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아이가 자라날 세상이, 자신이 지나온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훨씬 더 낯선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