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SF 대하소설)

정통 본편 [정통 본편 08화] 제8장 — 경계의 거리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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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본편 08화] 제8장 — 경계의 거리 (2029)
《욕망의 끝》 제1권 08화 작가: 타무르(Tamur) - 안만근

욕망의 끝

제8장 — 경계의 거리 (2029)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습한 밤이었다.

낮에 한바탕 쏟아진 장대비가 그친 뒤의 도시에는 특유의 메마른 비린내가 남아 있었다. 현수는 아무런 계획 없이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갈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뇌보다 먼저, 처음부터 정해진 방향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술을 찾았다.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낯선 선술집. 현수는 바 테이블 구석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독한 위스키를 주문했다. 한 잔. 그리고 연거푸 또 한 잔.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술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비는 완전히 그쳐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골목의 끝자락에, 붉고 흐릿한 간판 하나가 박쥐처럼 매달려 있었다.

[성인 전용 인텔리전트 멀티숍]

네온사인 아래, 기괴할 정도로 고요하게 서 있는 낡은 건물. 현수는 그 간판 앞에서 못 박힌 듯 걸음을 멈췄다.

쇼윈도 유리창 너머로 진열된 상품들이 흐릿한 조명을 받고 있었다. 실제 인간의 신체 형태를 정교하게 모방한 실리콘 바디들. 현수는 흐려진 눈으로 유리창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건…… 사람인가.'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정신 차려, 기계다. 하지만 뒤이어 더 잔인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저 기계들은 도대체 누구의 고독을 채우기 위해 저기 서 있는 거지.'

딸랑.

문이 열렸다. 그의 억눌린 고독이 스스로 몸을 밀어 넣은 것이었다. 매장 안의 공기는 냉랭하고 건조했다. 공기 중에는 미묘한 화학 향료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처음 오셨나요? 도와드릴까요?"

등 뒤에서 직원이 정중하고 낮은 목소리로 다가왔다. 현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구경 좀 하겠습니다."

현수는 전신이 실리콘으로 구현된 한 특정 모델 앞에 멈춰 섰다. 손가락 끝을 살짝 대자, 인위적인 체온 유지 기능 덕분에 신기하게도 미약한 온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 가슴 안에는 심장박동도, 숨소리도 없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머릿속에 은하의 잔상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센강의 빗속에서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환하게 웃던 그 생동감 넘치던 얼굴. 그리고 마지막 날, 울음을 참으며 내뱉었던 그 잔인한 한마디. "난 이제 지쳤어." 그 목소리.

직원이 다시 조용히 다가와 거리를 좁혔다.

"눈여겨보신 모델이 있으신가요? 직접 촉감을 확인해보실 수도 있습니다."

현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마음속으로 어떤 파멸적인 선택을 하려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끝까지 모르는 척 도망치고 싶었다.

"다음에……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현수는 패배자처럼 뒤로 물러섰다. 딸랑. 종소리가 다시 서늘하게 울렸다.

차가운 밤거리로 다시 나왔을 때, 매서운 밤바람이 술기운이 오른 얼굴을 사정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술김에 구경만 한 거야!'

지독한 자기합리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미 마음속 깊은 곳의 베어링 하나가 완전히 어긋나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집을 향해 젖은 아스팔트를 걸어가며, 현수는 거부할 수 없는 음산한 확신을 느꼈다. 자신은 조만간 반드시 그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갈 것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어떻게……"

작게 뱉어낸 혼잣말에는 아무런 힘도, 설득력도 없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적인 선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처절한 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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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타무르(Tamur) - 안만근
[정통 본편 01화] 제1장 — 6억의 축배 (통합 초고) [정통 본편 02화] 제2장 — 행복한 시절 [정통 본편 03화] 제3장 — 균열의 시작 (2028) [정통 본편 04화] 막간 — 최 부장의 전화 (2028, 균열 시기에 삽입) [정통 본편 05화] 제5장 — 갈등과 이별 (2028) [정통 본편 06화] 제6장 — 은하 이후의 계절 (2029) [정통 본편 07화] 제7장 — 인간을 닮은 상품 (2029) [정통 본편 08화] 제8장 — 경계의 거리 (2029) [정통 본편 09화] 제9장 — 주문 [정통 본편 10화] 8. 도착 (2029, '주문' 챕터 직후에 삽입) [정통 본편 11화] 제11장 — 결합 [정통 본편 12화] 제12장 — 밤이 없는 것 [정통 본편 13화] 제13장 — 장바구니 [정통 본편 14화] 제14장 — 구별 [정통 본편 15화] 제15장 — 재회 [정통 본편 16화] 제16장 — 식탁 [정통 본편 17화] 제17장 — 주름 [정통 본편 18화] 제18장 — 거리의 풍경 [정통 본편 19화] 제19장 — 홀로 남은 자들 [정통 본편 20화] 제20장 — 표식이 사라지다 [정통 본편 21화] 제21장 — 은수의 친구들 [정통 본편 22화] 제22장 — 혼돈의 시대 [정통 본편 23화] 제23장 — 공장의 요람 [정통 본편 24화] 제24장 — 마지막 세대 [정통 본편 25화] 제25장 — 마지막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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